누군가 회고록을 쓰는 일은, 기억의 바닷속을 깊이 헤집고 들어가는 일과 똑같기 때문에 누구나 허우적 대고,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2020년 올 한 해는 이젠 말하기도 듣기도 지겨울 정도로, 다사다난한 해였다. 우리는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사회적 교류를 단절된 채로 1년의 대부분을 보내야 했다.
올해 에른스트 디터 란터만의 ‘불안사회’라는 책을 인상깊게 읽었었는데, 현대인들은 급변하는 사회를 자기 확신의 세계와 ‘싱크’를 맞추지 못하는 현상을 불안의 주 원인으로 꼽았다. 본인의 삶의 페이스, 양식을 뺏긴 채 무기력 해지는 현상이 고작 질병 하나 때문이라는 사실이 나도 싫었고, 개인적으로는 외부와 단절된 환경 속에서 보낸 1년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평소에도 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의견을 듣고, 거기서 삶의 자세를 배운다던지 하는 스탠스를 취하는데, 올해는 그런 것을 많이 줄이고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다. 비슷한 시기로 군인 시절이 있는데, 애초에 나는 혼자 사색하고 고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답답하더라고.
그래서 올해 처음으로 회고록을 공개하기로 했다. 나는 이렇게 1년 살아왔고, 누군가가 그냥 내 주저리주저리 사는 얘기에 관심 가지지 않을까 해서. 내가 느꼈던 것처럼,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그 이의 답답함이 해소가 되기를 기원하며.
* 이야기가 거의 개발, 취준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1,2월
1월부터 본격적으로 취업을 위한 준비를 슬슬 시작했다. 일단 이 당시 목표는 올해 여름까지 개발 직군 인턴을 시작하는 것으로 잡았다. 올해 시작하면서 코딩테스트 공부도 같이 시작했는데, 겨울방학 기간동안 내가 잘 공부를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시작했던 것 같다. 코딩테스트와 더불어서 겨울방학 계절학기 조교와 OPIC 공부도 같이 해나갔던 것 같다. 1월달에는 그렇게 빡세게 세 가지를 병행하면서 정신없이 살았다. 1월 말쯤에 오픽과 조교 일을 끝낸 후, 갑자기 터진 코로나 때문에 2월달부터는 쉽사리 밖에 나가지도 못했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도 겪고, 자연스레 번아웃이 찾아온거 같다. (2019년 5월 이후에 9달 정도만에 찾아옴) 작년 5월의 경우는 어찌저찌 할 것들을 억지로 해나가면서 버텼었던거 같은데, 2월달은 약 1주일 정도는 쉬었던 것 같다. 그래도 코딩테스트 공부는 꾸준히 해나갔던 것 같다. 1,2월달에 약 두 달간 바짝 공부한 실력이 거의 지금의 내 실력의 기초체력이 된 것 같다.
#3월~6월
3월달에는 수업들이 크게 부담이 없어서 개인 공부를 조금씩 해나가면서 수업을 들었었는데 4월부터는 수업들에만 집중한 것 같다. 5전공 1교양(플젝과목) 이어서 수업을 따라가는게 쉽진 않았지만, 열심히 따라간 덕에 그래도 학교 생활 최초로 학점 4점대를 받아볼 수 있었다..! 과목들 중에는 운영체제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농담 안하고 이 한 과목이 나머지 다섯과목 합친 것보다 수업에서 요구하는 양이 빡셌다. 죽는 줄 알았다 진심으로 ㅋㅋㅋㅋ 뭐 지금은 돌이켜 보니까 추억이긴 한데, 역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프로그래밍에 엄청난 재능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밥 벌어 먹을 재능은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코딩테스트를 한 두 개씩 보기 시작했는데, 테스트별로 어려운 문제들 한 두개씩 빼고는 다 풀 실력이 되어 코딩테스트에 어느정도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외에 취업을 위한 프로젝트 경험, 포트폴리오, 면접 등이 준비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아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심지어 세부 관심분야는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코테만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였다.
결과는 인턴 공고였는데도 서류부터 떨어지는 회사들도 많았고, 현실과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였었다. 좋은 회사에 취업하기엔 아직 준비가 더 필요함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시기였다.
인턴 공고를 이때부터 엄청 많이 보기 시작했는데, 보다 보면서 ‘아 이런 분야의 기술을 공부하면 재밌을 것 같다’, ‘이쪽 분야로 세부 분야를 잡으면 어떤 일을 할까?’ 와 같은 생각을 많이 하기 시작한 것 같다. 주위에 물어볼 곳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혼자 많이 고민하고, 인터넷에서 현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글/회사 기술 블로그 글들을 많이 찾아보고 직무를 찾아 나갔던 것 같다. 이때까지 붙은 인턴자리는 단 한군데도 없었다.
#7,8월
그렇게 몇 차례 회사들을 떨어지고 나서, 상반기 마지막 지원이다 라고 생각하고 넣은 인턴이 LG CNS 채용연계형 인턴이었다. 6월 중순부터 서류를 준비했는데, 내가 회장을 했었던 동아리로 채용공고가 날아왔었고, 동아리 회장을 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서류를 붙게 되었다. 코딩테스트까지 붙은 후 면접까지 간 첫 회사였는데, 몇일 간 정말 열심히 면접 준비를 했다. 회사 조사부터 관심 기술, 각오 등등.. 결과는 정말 운이 좋게도 합격. 간절하면 이루어 진다고 입사 전에 정말 합격을 원했었는데 붙게 되었다. 5,6월에 비해 크게 많이 더 준비가 이루어 진 건 없었지만 조교 경험, 동아리 회장 경험 등 유관 경험들 이야기를 좋게 봐주셨던 것 같다.
같이 인턴한 형/동갑 친구들도 다 잘하고 멋있는 사람들이었지만 그에 비해 나는 인턴 경험도 처음이고 지식도 부족했다. 그래서 많이 배울 각오를 하고 회사생활에 임했던 것 같다. 하지만 5주간의 인턴기간은 사실 무언가를 제대로 배우거나 익히기엔 촉박한 시간이었다. 5주동안 ‘이 녀석이 이 회사에서 같이 일할 만한 녀석인가’를 평가받는 느낌이 조금 더 강했던 것 같다. 그래도 같이 일한 사람들 다 너무 좋은 분들이었고, 그렇게 인턴생활을 하며 후회되지 않는 여름방학을 보냈던 것 같다.
#9,10월
이 기간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휴식’ 기간이었다. 농담 안하고 개인적으로는 1학기와 입사준비, 인턴의 약 6달의 일정을 소화하고 휴학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치만 LG CNS에 최종 합격하고 졸업을 1년 안에 해내야 하는 제약조건이 걸리는 바람에, 결국 휴학 한 번 없이 졸업을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 대신 수업은 4개만 신청하고, 들어야 하는 수업 이외에 다른 공부는 특별히 하지 않고 휴식과 페이스 찾기에 집중했었다. 취업 부담이 일단 줄어든 것도 있었고, 맘놓고 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두 달 거의 아무것도 안하면서 쉬어보니 결론은 쉴 때도 평소에 못해본 것들 하면서 쉬는 게 나중에 후회가 없다는 사실. 책이랑 아티클들도 좀 많이 읽고, 강연들도 더 찾아볼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11,12월
다시 바빴던 시기다. 5,6월보다는 공고를 적게 내긴 했지만 약 3군데 정도 인턴 공고를 내면서 겨울에 할 인턴들을 찾았다. 겨울에 놀기는 또 싫어서 공고들을 찾아다녔다. 4-2가 되면서 인프라 엔지니어 쪽으로 직무를 거의 정하면서, 사실 인턴자리를 찾기 까다로웠다. 인턴자리가 많이 없는 직무였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11월은 시간이 많아 코테 공부나 면접준비를 제대로는 하지 못했던게 아쉬웠다.
그리고 프로젝트 3개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실 이번 수업 4개 중 3개가 프로젝트 과목이거나 사이드 프로젝트가 진행된 과목이었다. 프로젝트 마감/개발 시작 이 정신없이 겹쳐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을 빠르게 구분하고 시간을 투자해 나갔던 것 같다. 종강할 때까지 약 80%정도의 시간들을 프로젝트에 투자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현재
현재는 네오위즈에서 클라우드 인프라 인턴으로 근무중이다. 종강하고 약 3일정도 쉬고 나서바로 일하는 중이다.Terraform, ansible 등의 프로비저닝 툴을 익히고 있는데, 리눅스 등 부수적으로 공부해야 할 부분들도 많은 것 같고 해서 열심히 배워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턴은 3월 말까지라 기간은 아직 3달이나 남았다. 천천히 일과 공부 밸런스를 맞추되, 일하면서 배운 지식들은 따로 정리해두는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다. 한 달은 학교와 인턴을 병행할 생각이고, 3월 달부터는 학교와 직장을 어떻게 밸런스를 맞출 것인지 따로 고민해 봐야겠지만 일단은 일에 집중하기.
# 잘 했던 점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는 나쁘지 않은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학점도 두 학기 평균을 내보면 4점을 아주 약간 넘겼고, 연초에 그토록 원했던 인턴경험과 프로젝트 경험을 모두 얻은 1년이었다. 비결이랄 것도 없지만, 닥치는 대로 도전해보는 자세가 먹혔던 것 같다. 좋은 기회다라고 생각한 인턴들은 다 넣어봤었고, 코딩테스트 준비를 연초부터 착실하게 해 놓은 게 큰 도움이 됐었다. 프로젝트 경험은 외부보단 교내에서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수업을 적극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챙기고 없는 건 포기해 가면서 낼 수 있는 아웃풋은 최대한 내려고 노력했는데, 어느정도 통했던 것 같다.
# 아쉬웠던 점
‘1년동안 성장을 하였나?’ 라는 질문에 대답한다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 같다. 인턴경험 없이 내년에 바로 취준전선에 들어가기가 너무 무서웠고, 취준 및 스펙 쌓기에 급급했던 1년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기술적으로 만족할 만한 성장을 하진 못했던 것 같다. 물론 반대로 기술적인 공부만 하는 방향으로 2020의 방향성을 잡았다면 빈약한 스펙에 더 불안해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후회는 했겠지만, 올해 제일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이 부분이다.
그리고 코로나 탓을 하는건 아니지만 뭔가 다른 해보다 의욕이 좀 떨어진 채 그냥 쉬면서 보낸 시간이 좀 길었던 것 같다. 쉬어가는 것이 나쁜 건 아니지만, 항상 후회되니까 ㅎㅎ
# 마무리 및 짧은 내년 각오
어쨌던 ‘내년은 더 좋아져 있겠지’ 라는 희망을 품어 본다. 이제 20대 후반, 본격적인 사회생활의 첫 시작이니까, 인생에 대해 조금 더 짜임새 있게 계획도 짜고 책임감 있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보다 더 성장할 수 있는 2021년이 되기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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